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한강. 그 이름이 가지는 파급력은 대단하다. 나 역시 저자의 이름만 보고도 책을 집어들었으니 말이다. 인터스텔라에서 본듯한 거대한 높은 파도같은 표지와 주어가 명확하지 않은 제목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작별은 피동적인, 그러니까 주로 당하는 것 이라고 볼 수 있는데. 뒤에 않는다 는 다짐, 혹은 주장을 나타낸다. 이토록 상반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의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제목이다.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지 말 걸 그랬다.
재미없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잘 쓰여진 책을 내가 감히 재미없다고 평가해도 되려나? 한강 작가의 문장력과 묘사력은 사람의 그것을 넘어섰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를 읽어봤다면, 매 챕터마다 바뀌는 화자와 시점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화자가 보고 있는 것을 내가 같이 보고있다는 동일화와 시종일관 ‘너’로 지칭되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화자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을 동시에 느껴봤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민감하고 서글픈 소재를 아주 독특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낸 한강작가가 쓰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기대를 했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하지만 책의 첫 장을 펼쳤을때 나는 조금 후회했다. 전작의 유물, 그러니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을 내고도 그것에 관한 악몽에 시달리다 결국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경하가 주인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회피형 인간이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고, 나는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을 당시에도 그 얇은 책을 읽는데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심지어 다른 일을 하느라 오래 걸린 게 아니라, 정말 한장 한장을 읽는데 오랜 시간을 소모했다. 나같은 사람은 고작 얄팍한 애도의 마음 하나로 치부해버리는 그 날의 일들을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써내려 갔을까. 작은 단어 하나하나가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고, 깃털같은 종이 한장이 천근처럼 느껴져 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이 두려웠다. 그 책이 명작이라는 객관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두번 다시 책을 읽으면서 두렵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이 얘기라니. 나는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역시 읽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다른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갈 자신도 없고. 찔끔찔끔씩 읽다가 말다가 하면서 항상 가방에 넣어다녔다. 가방은 계속 무거워져만 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광주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것은 제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하가 극도로 증오하고 또 시달렸던 참담했던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책 안에서 경하가 쓴 책을 편집자는 왜 5월에 내자고 했을까? 그 점이 마케팅에도 좋을 것이라고 경하를 설득하는 장면이 책의 극초반에 나오기 때문에 광주에 관한 이야기 인줄 알았다. 그리고 경하의 꿈에는 뚜렷하게 살인자, 그러니까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가 나온다. 나는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적어도 광주와 제주 두 사건의 차이에 대해서는 안다. 그리고 어느쪽이 뚜렷한 범인이 있냐고 묻는다면 전자에 가깝다. 어쨋든 책을 다 읽고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나는 초반에는 좀 헷갈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워낙 복잡한 책이기에 이해를 돕기위해 간단하게 요약해보겠다.
이 책은 ‘소년이 온다’ 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계속되는 악몽과 트라우마에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잃은 경하는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지만, 유서를 마무리 짓지 못해 그 삶을 연명하고 있다. 그녀는 사는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유서의 수신인 칸에 이름을 채워 넣기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유서를 썻다 찢었다 썻다 다시 찢는 날이 반복되는 무렵 경하는 문자 하나를 받는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독립영화 감독인 인선에게서. 인선과 경하는 젊은시절 함께 작가와 감독으로 일하던 사이로 우정을 쌓아온 사이다. 언젠가 경하는 자신의 악몽을 다스리기위해 나무를 깎아 위령제 비슷한 것을 지내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자고 제안하고 인선은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아 흐지부지 된 상태였다. 인선은 경하에게 지금 급하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줄수 있냐고 물었고 경하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인선답지 않은 것에 불안감을 느껴 황급히 인선을 찾아 나선다. 인선이 있는 곳은 서울의 한 유명한 신경외과병원.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목공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수술을 위해 서울까지 옮겨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절대 작가가 되지 못하겠다. 라는 확신이 들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선의 손가락 봉합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신경 연결을 유지하기위해 꽤나 긴 시간동안 3분 간격으로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고통을 느껴야했다. 하루는 1440분 이기 때문에 인선은 하루에 480번을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견뎌야한다. 그런데 인선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않고,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기꺼이 그 고통을 견딘다. 바늘이 몸을 찔러올 때면 창밖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는다. 이건 진짜일까? 정말 사람의 어딘가가 잘리고 봉합수술을 하고 나면 신경을 되살리기위해 바늘로 계속 찔러야할까? 만약 그렇다면 한강 작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이 부분은 뒤와 연결되는 소설적 장치이다. 인선은 자신의 상태가 이러니 경하에게 집에 있는 새들한테 밥을 좀 주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지금 당장(진짜 당장, 집에 들러서 짐 챙기지도 말고 지금 병원을 나서서 바로 공항으로) 자기 대신 제주의 집에 가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이야기 전개를 위해 경하를 인선의 집에 불러들일 이유같은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한강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로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봉합수술에 대한 자료조사를 할 생각을 했을까? 나도 매번 소설 비슷한 것을 쓰려고 늘 발버둥치고 있지만, 이렇게 잘 쓰여진 책을 읽을때마다 확신하곤 한다. 아, 난 절대 작가가 될 수 없겠구나. 어쨋든 인선의 부탁에 경하는 그길로 제주로 향한다. 그런데 예전에 한번 가본적 있는 기억만으로 인선의 집을 찾기에는 쉽지 않았다. 지도에도 안나오는 첩첩산중에 홀로 있는 작은 오두막. 그 집이 P읍에 있다는 정보 하나만 들고 경하는 앞이 보이지도 않는 눈보라가 치는 제주에 도착했다. 우여곡절(진짜 우여곡절이다. 다 옮길 수 없으니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끝에 경하는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경하의 엄청난 사투가 무색하게도 인선이 부탁한 새는 이미 얼어 죽어있었다. 인선이 실려오고나서 내리친 눈보라가 오두막의 전기를 끊어 사람도 쉽게 견디지 못하는 얼음장은 작은 앵무새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쨋든 인선의 집까지 오느라 고생한 경하는 여기저기서 촛불을 찾아 키고 가스버너로 따뜻한 차를 끓여 몸을 녹이고 새를 묻어준다. 그리고 집을 돌아보다 인선이 사고가 난 작업장에 들어선다. 사고 당시 흩뿌려진 인선의 피가 그대로 굳은 작업장에는 옛날에 경하가 인선에게 제안했던 위령제 다큐멘터리에 쓰이는 나무들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경하가 꾸는 악몽은 사람같으면서도 묘비같은 검은 나무들이 수없이 놓여있는 곳에 빠르게 물이 차기 시작해 그 밑에 파묻힌 시체들이 모두 쓸려내려가는 꿈이었다. 경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수천그루의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사이 이미 파도는 경하의 무릅까지 순식간에 차오르는 그런 꿈. 결국 경하는 꿈에서 본 검은 나무들을 만들어 위령제를 지내자고 인선에게 제안했고, 인선은 경하가 그 제안을 잊어가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나무를 자르고 말리고 옻으로 검게 칠하고있던 것이었다.
한강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뭐랄까… 시력 1.2를 자랑하는 내가 엄청난 근시가 된듯한 기분이다. 멀리서 볼때는 그것이 어떤 형상을 하고있는지, 그래서 저게 무엇이다 라는 확신까지 들게 하지만, 가까이서보면 오히려 정말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흐릿해진다. 지금부터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다. 신기루를 보고있는 것 같으면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으면서도 신기하게 이해가 된다. 그래! 마치 제주말 같다. 책에서 꽤나 많은 분량의 제주말이 나온다. 옛날 제주사투리를 구사하는 할머니를 찍은 인터뷰에 대한 묘사인데, 그 말이 책 몇장을 차지할 정도로 분량이 꽤 길다. 그 내용은 분명히 내가 처음듣는 단어와 처음듣는 문장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장면 역시 그렇다. 인선이 만들어놓은 나무들을 둘러보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있을때, 아까 묻어준 앵무새와 인선이 나타난다. 경하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그 둘은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선의 부모님은 제주 4.3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그리고 인선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위해 지금까지 홀로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찍고 나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선의 안내를 받아 경하는 제주 4.3 사건의 자세한 이야기와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그 사건에 얽혀있었는지에 대해 듣게 된다.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가 아닌, 생존자들과 생존자이고 싶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 너무나 처절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입술을 깨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이야기.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이 모은 자료를 통해 시간순으로 흘러가는 그 참극의 역사의 민낯 앞에서 책을 읽는 나는 경하와 마찬가지로 두려웠다.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보다 더 두려웠다. 광주보다 더 생소한 이야기어서 그랬을 수 도 있을것 같다. 인선과 경하는 이야기를 마치고 검은 나무를 심을 장소를 보러 나간다. 소리없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밖, 경하와 인선은 나무 심을 장소를 확인하고 솜같은 눈에 눕는다. 거의 꺼져가는 양초를 인선에게 건네받은 경하는 인선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촛불이 꺼졌다. 경하는 성냥을 키려고 했다. 첫번째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두번째에는 성냥이 부러져버렸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우리는 실제로 매일 견디며 산다. 아침에 일어나며 졸리고 피곤한 몸을 견디고, 힘든 회사일과 쉽지 않은 인생을 견디고, 배고픔을 견디고, 그리움을 견디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견디고, 아픔을 견디고, 상처를 견디고. 우리는 견딜 때 무엇을 생각하며 견디고 있나?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그런데 만약 내가 견뎌야 하는 일이 내 잘못이 아닌 시대가 낸 상처라면, 나는 얼마나 대단한 생각을 해야 견딜 수 있을까? 책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견디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속에서 인선은 자신의 어머니가 한없이 나약하고 조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견디고 있던것은 가출해 속 썩이는 딸 보다도, 나이가 들어 자신을 괴롭히는 지독한 관절염 보다도, 꺼져가는 생명과 지워져가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 보다도 더 거대한 것이었다. 인선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곧 나무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견디던 것에 비하면, 인선의 손 끝을 3분마다 비집고 들어오는 바늘 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수 있는 것이었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다. ‘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그러니까 불이나 네가 있어야 견딜수 있다는 말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다는 말인가. 나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더라도,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이제 없더라도 그것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견딜 수 있다고. 살면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수많은 고통들 속에서 나를 계속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 인가, 너 인가, 혹은 불 과 너를 생각하는 것인가.
독후감을 머릿속으로 초안을 다 잡아놓은지는 꽤 되었다. 실제로 이 책을 다 읽고 다음책으로 넘어간지도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그런데도 독후감을 기록하는것을 미뤄왔던 것은 역시나 책이 가진 무게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데 정말 의외의 곳에서 독후감을 쓸 결심을 하게 됐다. 바로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본 후에다. (스포주의) 배경이 제주인 것 말고는 사실상 딱히 책과 공통점이 없는 드라마는 마지막화에서 나로하여금 이 책을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가 죽고 친구의 아버지의 첩이 된 어머니와 동석은 고등학생때 부터 연을 끊고 살았다. 어느덧 중년이 된 동석(이병헌)은 평생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왔다. 전국을 돌며 만물상을 하다 결국 다시 제주로 돌아온 후에도 동석은 어머니를 본체만체할 뿐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김혜자)가 동석에게 새아버지 제사에 같이가자고 한다. 동석은 불같이 화를 내지만 주변에서 어머니가 말기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못이기는척 따라나선다. 기왕 나온거 자신도 어머니에게 가진 원한을 다 풀고자 하는 요량으로 우선 어머니가 하고싶은 것들을 모두 들어준다. 제사도 가고, 고향도 가고, 짜장면도 먹는다. 그리곤 동석도 울분을 다 토해내고 서로의 앙금이 풀리고난 후 제주로 돌아온 동석은 어색하게 내일 아침에 된장찌게가 먹고싶으니 해달라고 말한다. 동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장찌게 였는데, 어머니의 것과 달리 맛이 없어 고등학교때 집을 나온 이후로 단 한번도 된장찌게를 먹지 않았다. 이에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동석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놓은 밥상을 차려놓고, 그 옆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다. 동석은 아침을 먹으러 찾아왔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고 옆에 함께 누웠다가 조용히 오열한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팔자가 사나운 여인’ 이라는 주제의 에피소드가 꽤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김혜자님이 연기한 강옥동 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이럴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인생에 굴곡이 많다못해 구겨졌는데, 그녀는 어떻게 그 인생을 견딜 수 있었을까. 어떻게 암이 말기까지 진행되는 고통을 참아내고 피를 토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작별하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강옥동도 그저 자신의 하나남은 아들을 생각하며 견딘 것이다. 동석과 함께한 마지막 여행은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제사에서는 새아빠의 아들과 동석이 싸웠고, 고향은 저수지가 되어 없어졌다. 함께 간 짜장면집에서는 다른 단골과 비교해 차별대우를 받았다. 제주 사람이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한라산 백록담도 기상악화로 결국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동석과 함께여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이 좋아하던 된장찌게를 해줄 수 있어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수많은 고통들을 견디다 드디어 해방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쓰다보니 드라마 리뷰 같은데… 책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나 책의 후반부는 몽롱하기 때문에, 실제로 경하와 인선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아마 그런건 사실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결말을 정해볼까 한다. 경하는 어쨋든 죽고싶었다. 그녀가 취재한 사건과 그것을 소재로 낸 책에 너무 깊게 동화된 나머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잃었고 자기 자신도 잃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을까? 바로 검은 나무였다. 그녀는 유서를 받을 사람의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 다만 자신도 그게 무엇인지 몰랐을 뿐. 결국 자신이 바랬던 검은 나무들이 준비되었고 심어질 장소 역시 정해졌다는 것을 알게된 경하는 조용히 눈덮힌 숲속에 눕는다. 눈이 침대보다 더 편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악몽때문에 단 하루도 편하게 자지 못했다. 이제 조금 잘까 한다. 이렇듯 견디게 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불, 너, 그리고 생각은 희망일 수도 있고 절망일 수도 있다. 어쨋든 덕분에 우리는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있는것 같다. 세상에 온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가는건 그렇지 않다.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류 전체적인 가스라이팅은 그렇다 쳐도, 세상을 떠나는게 더 나을 정도로 치명적인 사건을 겪고도 아직까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탱하는 것은 어떠한 생각일까? 그럼 나는 지금 어떨까?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이 삶을 견디고 있나?
쓰다보니 무척 길게 써버렸지만 나는 이 책이 재미 없었다. 읽는 것이 무서웠고, 작가의 문장력이 구현해내는 생생한 절망의 순간들이 나를 괴롭게했다. 어쩌면 다시는 한강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언제가는 반드시 책으로 내야하는 이야기였다. 그게 한강 작가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히 재미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쓰는 작가는 나보다 더 무섭고 두려웠을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의 어떤 견딤으로 인해 책은 무사히 출간되었다. 오늘 독후감을 쓰려고 찾아보니 책 이미지에 베스트 셀러 표지가 붙어있었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읽어 광주 처럼 제주도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의미에서 무거운 주제를 등에 지고 밤새 펜을 움직였을 작가님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