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에 비해 꽤나 오래 잡고 있었던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작가의 문체가 무척이나 잘 읽히고 위트있는 편인 것에 비해 빠르게 읽히지 않았던건 아마 에세이라는 특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작가가 거의 매일 쓴 일기를 엮은 것인데, 그 내용의 길이가 짧으면 한줄이고 길어야 두페이지 정도였다. 이야기의 호흡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아마 출퇴근하면서 짬짬히 책을 보는 사람이 읽기 편한 책인듯 하다. 꽤나 재밌었다.
나는 그냥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부류의 인간이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꿈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서점을 차리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독서와 책, 그리고 서점은 내가 애정하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다. 서점 이름도 벌써 생각 해놨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기 까지는 왜 내가 서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릴적 다녔던 책방에서의 좋은 기억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어릴적 살던 시골마을에는 서점이랄게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동네에 '꼬마 루소'라는 작은 책방이 하나 생겼다. 아직도 그 이름과 간판의 모양 그리고 위치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책방은 정말 혁신적이게도 그시절에는 무척 생소한 개념이었던 '구독' 서비스를 시행했는데, 한달에 얼마를 내면 책을 얼마든지 빌려다가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꼬마 루소의 구독권을 결제해 줬고,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꼬마 루소에서 구독 선물로 준 쇼핑백 모양의 책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며 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새로 읽을 책을 탐닉하러 가곤 했다. 꼬마 루소에 들어서면 전면이 유리로 된 입구와 창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면은 책장으로 둘러쌓여 있었는데 정작 중간에는 작은 의자와 책상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은 푹신한 스펀지 바닥타일이 깔려있었다. 나는 집에 바로 가도 되는 날이 아니면 가끔 꼬마 루소의 바닥에 널부러져 책을 읽다가 돌아가곤 했다. 평화롭고 조용한 어린날의 서점 기억. 그것이 내게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준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꿈을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숀 비텔이 쓴 서점 일기라는 책을 발견했다. 서점에서 대충 흝어봤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레어닉이다. 서점에서 쓴 일기 이름이 서점 일기 라니. 게다가 서점 이름이 'The book shop' 이라니. 중국집 이름이 '중국집'인 셈이 아닌가.' 하며 혼자 속으로 낄낄 댔다. 어쨋든 나는 지금까지 산 여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철저하게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구입했다. 서점을 운영하며 쓴 일기니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으며!
결과적으로 내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책의 저자인 숀 비텔은 스코틀랜드의 위그타운이라는 곳에서 'The book shop' 이라는 이름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점 일기는 그 서점을 운영하면서 그날그날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해 놓은 일기 겸 서점 운영일지를 엮어놓은 책이다. 위그타운은 스코틀랜드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세계최초로 북타운으로 지정됐다고는 하는데.. 작은 마을이라는 수식어가 진짜인지 인터넷에 검색해도 당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서점 일기가 대박을 쳐서 몇몇 여행 사이트에 서점일기의 배경인 더북숍이 여행지로 소개되고 있는게 전부다. 아무튼 서점 일기에 따르면 위그타운에는 북타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년 북페스티벌이 열리고 책방과 책을 사러오는 사람도 많은듯 했다(일반적인 다른 죽어가는 책방에 비해). 그곳에서 저자는 책을 사러온 진상 손님과 책을 팔러온 진상 손님, 그리고 책방을 죽이는 거대한 자본의 힘에 맞서 싸우며 하루하루 책방을 꾸려나간다. 뿐만 아니라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서점의 평범하지 않은 직원들과 위그타운 근처에서 각양각색의 삶을 사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서점은 365일 지루할 틈이 없어보인다. 나는 읽는 내내 여러 지역으로 중고서적을 사러 가고 책에 가격을 매기는 저자의 감정안(?)에 감탄했다. 만약 내가 중고서점을 운영한다고 해도 역사적의 고서들의 가치를 알아볼 자신이 없다. 다행히도 내가 운영하고 싶은 책방은 중고서점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무조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새 책을 사서 읽는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없다. 아무튼 운영하고자하는 책방의 형태와 환경이 너무 다르기때문에 정작 기대했던 책방 운영에 관한 노하우는 그다지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는 진상손님들에 대한 경고와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그렇게 고고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에 대해서는 꽤나 큰 수확이기도 하다. 나는 서점을 도피처로 삼는 사람 중 하나다. 비록 한번도 서점에 앉아서 책을 본 적은 없지만 속이 시끄러울때는 서점에가서 오랜시간 읽을 책을 고르고 몇권 사서 나오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편이다. 그랬기 때문에 향후 내가 서점을 운영하게 되면 굉장히 따사로운 나날과 책 좋아하는 조용한 사람들만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서점 일기에서는 저자 뿐만아니라 조지 오웰마저 등장해 그런 부푼 기대를 품고 서점을 차리려는 나를 뜯어말린다. 저자는 매월 첫번째 일기 시작 전에는 조지 오웰의 '서점의 추억'에서 발췌한 부분을 적어 놓았는데, 그 내용은 상당히 염세적이고 조소적이다. 세상의 서점에 대한 안좋은 얘기는 다 모아놓은 것 같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절대 책방을 차리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적어놓은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참고로 우리가 아는 동물농장의 그 조지 오웰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조지 오웰은 책을 사랑하기 때문에 서점을 사랑한다. 저자는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또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기뻐했다. 가끔 서점을 운영하는게 힘들고 질리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즐거움을 얻고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서점이 아니라 그 어느곳에서든 똑같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자와 조지 오웰은 내 '책방 꿈'을 접게하는 데는 실패했다. 나는 누가 어떤 영화를 보고 재미없다고 해도 기어이 보고야 마는 타입이기 때문에. 히히.
서점 일기가 재미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다. 아마 다분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나날들이어서 그런듯하다. 심지어 책이 쓰여졌을 무렵 저자는 이미 서점을 11년이나 운영한 뒤 였는데, 왜 하필 이 시기를 책으로 엮어 냈을까 궁금증이 들 정도. 아마 지난 5년과 향후 5년도 다 비슷한 일상일 것 같은데... 오히려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건 앞서 말했던 거대 자본과의 싸움, 그러니까 서점 일기에서는 아마존과의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는 일년(일기가 진행되는)동안 거의 일주일에 한번꼴로 아마존 같은 대형 자본이 서점을 망치고 있다고 불평한다. 실제로 많은 손님들이 서점에 방문해 책의 가격을 보고는 아마존이 더 싸다고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아마존 등의 책의 금액적인 가치를 낮추는 거대한 시스템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어쨋거나 책과 책방을 사랑하는건 사랑하는거고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때로는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책으로 인한 수입이 더 많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그래도 비록 점령 당했지만 우리의 얼은 끝까지 지켜냈던 우리의 선조들 처럼 저자는 북클럽 운영과 페스티벌 지원 등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오프라인 중고 책방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쓴다. 그러한 저자의 고군분투는 얼핏보면 상당히 잔잔하고 냉소적이지만 그 안에선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십중팔구 내가 서점을 열게되더라도 똑같겠지. 비록 지금은 내가 팔려는 책을 어디서 떼와야하는지도 모르는 초짜지만, 언젠가는 나도 교보문고라는 바위에 머리를 들이받을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열심히 준비해서 쉽게 깨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먼 훗날 누군가가 이 독후감을 읽는다면 내가 차렸을 책방이 정말 있는지 한번쯤 검색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