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좋아하는 타인은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있다니.. 모순된 말이란 것을 안다. 아무튼 내가 글을 굉장히 잘쓴다고 생각하고, 쓰는 글마다 찾아서 보는 작가가 있다. 그 작가는 무척 넓은 스펙트럼의 글을 쓰는데, 종종 본인의 sns에 짧은 글을 여러개 올리곤 한다. 그가 책으로 내지 않고 sns에 올리는 글 들은 주로 그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내용이 많다.
작가는 서머싯 몸 이라던가 니체라던가 하는 내가 어디선가 들어본 유명한 작가들 뿐만 아니라, 나는 난생 처음 보는 그림의 난생 처음 보는 화가의 이름 까지 거론하며 그들의 인생과 작품과 시대상을 꼼꼼히 조사해서 그 작가들의 대표작에 대한 생각이나 작품과 작가를 관통하는 통념들에 대해 그가 느낀 것들을 단어로 치환한다. 나는 그 작가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 글들을 읽을때마다 그렇구나-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잘 알기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들 중 분명 입맛에 맞지 않는 책들도 있었을텐데 그것들도 꾹 참고 묵묵히 읽어냈을까.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역시나 팬심 때문이겠지. 그에게 서머싯 몸이라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나에게는 그 작가라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작가의 인생이나 삶 등 그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이 없다. 정확히는 나는 그 작가가 쓰는 글에만 관심이 없지, 그 작가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그 작가는 서머싯 몸의 팬이지만, 나는 그 작가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관심은 지나가다 본 고양이한테 쏠리는 것 보다도 작아질텐데. 이런 마음을 가진 내가 그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좋아하는 타인이 없다. 그냥 취향만 존재하는 것 같다. 책장이나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분명 다른 사람보다 더 빈번하게 눈에 띄는 작가와 아티스트가 있긴 하지만 그냥 그들이 구사하는 이야기의 흐름이 마음에 들어서이지 대상 자체에 대한 호감은 없다. 실제로 대학생활 때 내가 자주 듣던 가수가 학교 축제에 왔지만 나는 조금도 가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던 말던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변하는건 조금도 없다. 따지고보면 그들은 지금 내가 글을 쓰면서 앉아있는 카페 자리 왼쪽 뒤에 있는 사람과 다를바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 사람 자체를 대변하지 않을텐데, 그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나? 나는 그게 가능한 사람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래 나는 팬덤 문화에 대해 무척 부정적이었다. 바로 위에서 말한 대단하다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아이돌, 연예인, 운동선수, 아나운서 등등 다양한 팬덤층이 있는데, 내가 본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무척 쉽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담고 또 그만큼 쉽게 실망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글을 본적이 있다. 아니 무슨.. 브이앱? 브이라이브? 아무튼 이런 이름의 아이돌이 팬들과 소통하는 유료 창구가 있는데 어떤 아이돌은 이 브이앱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팬들이랑 소통을 자주해서 너무 행복하고 너무 고맙고, 또 어떤 아이돌은 한달에 한번 올까말까해서 팬들을 우습게 여겨서 실망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글의 댓글에는 비판과 옹호가 섞인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 무슨 다른 세상에 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퇴근 후 시간을 돈주고 핸드폰을 통해 연예인을 쳐다보고 있는 것에 할애한다는 것은 차치해도, 내가 알기로 그 실망이라는 연예인은 무척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도 자주내고, 연기로 드라마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고, 화보도 자주 찍는지 전혀 관심없는 내가 지나가다 볼 정도였다. 작가로 따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내려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팬’들은 그 이야기에 대해서가 아니고 그 사람에 대해 실망을 했다. 그 사람이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에비해 행복을 주는 연예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러니까 돈을 받는 라이브 방송을 킨 후 팬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우리 ooo들 안녕하세요~’ 하고 뭉뜽그린 인사를 하고 오늘 방송은 어땟고 내일 연습은 어떻고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이고 지금 든 가방은 어디 것이다 라는 내용의 얘기를 한 후 ‘다음에 또봐요~’ 하고 인사 할때 하트 이모티콘 몇개 날려주는 연예인이 행복을 주는 연예인인건가? 단순히 누군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게 솔직히 말해서 한심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딱히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욕하기 위해 계속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팬이 될 수 있다는게 부럽다. 팬들은 누군가를 좋아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듯 해 보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언가를 손꼽아 기다려본 적이 언제인가. 진심으로 기뻐했던 적은 언제였지? 상처받기 싫어서 이젠 더이상 남들에게 기대를 안하는 탓에 누군가에게 실망한 적도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바닥난 인류애에 냉소를 날리는 나만 있을 뿐. 책 좋아하고 글을 쓴다면서 연예인을 쳐다보고 있는 그들을 내려다봤던 나는 과연 그들보다 행복한가? 그들은 내가 느끼는 감정의 몇배를 느끼고 있는데.. 누가 더 풍성한 삶인가. 누가 더 다채로운 삶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내가 예로 든 연예인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해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 역시 내가 감히 경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면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 것이고 더 좋아지거나 싫어지거나 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의 화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그들을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까지의 나는 말하자면 내가 한번도 안먹어본 음식을 남들이 먹는 것만 보고 그거 맛없는데 왜자꾸 먹냐고 욕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남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욕할 자격이 있는것도 아닌데 심지어 나는 그 음식을 시도 해 본적도 없으면서! 그래서 나도 누군가의 팬이 되보기로 했다. 자주 듣던 래퍼의 sns를 팔로우하고 그가 라이브 방송을 할때 한번 찾아 들어가 봤다. 진짜 재미없더라. 5분도 못보고 나와버렸다. 위에서 언급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에 가보거나 라이브 방송을 본 적도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타인을 좋아하게 되는게 그렇게 쉬운일도 아닐 뿐더러 애초에 그런 성향이 아닌 내가 한순간에 바뀔리가 없다.
나도 누군가의 팬이 되고 싶다.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춤이든 그게 무엇이 됐던간에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나와 전혀 상관 없는 타인과 교감하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면, 나도 그들처럼 더 다양한 행복과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게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내가 팬이 될만한 대상을 만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한번도 대놓고 누군가의 팬을 욕한 적은 없지만 마음 한구석에 괜히 한심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지금 이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정말 죄송합니다..